오늘 내용의 핵심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미 이루었을 때의 감정과 생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요.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어보셨나요 ?
저는 사람들이 구하라, 구하고 또 구해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구한다는 것은 목소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제발 제 삶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고자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 삶 속에 에너지 장, 디바인 매트릭스의 필드를 향해 그 필드가 인식하는 언어로 말해야하며, 진정성이 담겨야 합니다. 필드는 우리의 목소리를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 필드는 우리 심장의 힘을 인식합니다. 오늘 이 순간 기억하십시오 !
우리가 심장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심장은 전기 파동과 자기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파동이 필드가 인식하는 언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심장을 통해 마치 이루어진 감정을 창조할 때 여러분의 기도는 이미 응답받은 기도인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전기와 자기의 파동을 만들어 자신에게 응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머지않아 이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여러분이 보고 있는 성경에는 여전히 이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16장 23-34절, 여러분의 성경은 요약본이며 편집본입니다. 편집본 성경은 이렇습니다.
"아버지께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것이 편집본의 구절입니다. 제게 이 사실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두 문장을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4세기경, 편집하면서 그들은 이 두 문장을 빼버렸습니다. 이 두 문장의 원문을 보고 싶으신가요 ?
"너희가 예수의 이름으로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구하는 모든 것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입니다. 만약 우리가 목소리로만 구했다면 우리는 구해온게 아닙니다. 이제 편집된 조각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게 여기에 있습니다. 매우 강력한 이 두 문장을 보십시오.
"숨은 동기없이 구하고 너의 응답에 감싸여라. 기쁨으로 가득찬 너의 바람에 싸여라."
전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보세요. 말로 기도를 하라고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느낌으로 가득 채우라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마치 이미 이루어진 느낌으로 가득 찬다면 이미 응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싸여져라" 만약 여러분의 삶에서 완벽한 관계맺기를 원한다면,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 치유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느끼십시오.
"너희가 바라는 것에 싸여라."
싸이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이 비로소 하나가 될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치유에 대한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 감정이 하나가 되면 그것은 필드가 인식하는 언어가 됩니다.
"숨은 동기없이 구하라."
무슨 뜻일까요 ? 숨은 동기... 판단하지 말고 구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불교 수행자들이 우리에게 정확히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옳다 그르다 또는 좋다 나쁘다 등의 에고의 마음이 아닌 마음으로 구하라. 심장으로부터 구하라. 왜냐하면 싸인다는 말은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 느끼며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다 이루어진 것처럼 느끼는 것 !
우리는 오늘 아침 20세기 초반의 철학자인 네빌에 대해 말했습니다. 인식의 힘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그가 말하는 것을 보시죠. 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 미래의 꿈을 이미 다 이루어진 느낌을 가정한 채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네빌은 말합니다. 꿈의 실현은 이미 다 이루어진 그 장소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콘크리트 벽돌을 깨는 것으로 집중력 시범을 보이는 격투기 선수들을 본 적 있나요 ? 벽돌을 깨는 비밀이 바로 이것입니다. 격투기 선수들이 벽돌에 집중할 때 그들이 가장 마지막 순간에 생각하는 것은 그 벽돌을 가격하는 그들의 손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만약 손에 대해 생각을 한다면 손이 다칠 것임을 알기에 그들은 대신 손이 벽돌을 통과한 후에 발생할 일들에 모든 집중을 합니다. 마치 그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그들은 그 벽돌의 밑 바로 그 장소에 집중하며 마치 손이 이미 그 장소에 있다는 느낌을 느낍니다.
성경의 구절은 비유입니다. 그것은 감정의 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미 이루어졌다는 듯한 경험의 감정을 느끼십시오. 여기까지 정리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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